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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맛집

가을 주말 여행 - 안동 병산서원, 봉정사

by 해피로즈 2019.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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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은 사적 제260호. 1613년(광해군 5)에 창건되었으며 유성룡의 위패를 모셨다. 원래 고려 말기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을 1572년(선조 5)에 유성룡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1629년 유진을 추가 배향했으며, 1863년(철종 14) 현재의 이름으로 사액받았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았던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병산서원은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6~17세기에 건립된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은 소수서원(1543년 건립), 남계서원(1552년 건립), 옥산서원(1573년 건립), 도산서원(1574년 건립), 필암서원(1590년 건립), 도동서원(1605년 건립), 병산서원(1613년 건립), 무성서원(1615년 건립), 돈암서원(1634년 건립)이다. <Daum 백과에서 발췌>



사진 속 산이 병산이고 

저 벤치는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풍경을 배경으로 둔 포토존..

우리도 다정한 척 한컷 찰칵,



만대루

양옆으로 서 있는 게 배롱나무인 것 같은데 여름엔 화사했을 듯..

시월 말엔 이런 풍경..


안에서 바라보는 만대루.


성리학의 비조인 주자(朱子, 1130~1200)의 스승 유자휘(劉子翬, 1101~1147)의 호가 병산(屛山)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병산서원의 명칭은 다분히 중의적이다. 류성룡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이 엿보인다.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서원을 짓는 까닭은 두 가지다. 후학을 가르치는 것과 사당에 모신 스승의 제사를 지내는 것. 그래서 서원 공간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강당 영역과 제사를 모시는 사당 영역이다. 서원 밖에서 강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외삼문(外三門), 강당에서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내삼문(內三門)이라고 하여 구분한다. 그리고 여기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인의 영역이 덧붙는다. 병산서원의 경우, 서비스 시설을 포함한 강당 영역은 고려 시대부터 유지되던 풍산 류씨 가문의 풍악서당이 1572년 풍산에서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세워졌지만, 이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607년에 다시 지어졌다. 사당 영역은 류성룡이 죽은 뒤 그의 제자 정경세, 이준 등이 1614년에 존덕사(尊德祠)를 지어 류성룡의 위패를 안치하면서 조성되었다. 이후 만대루까지 들어서고 부대시설이 완성되면서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은 철종 때인 1863년 사액서원(왕이 현판과 특혜를 주어 지정한 서원)이 되고, 1978년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Daum 백과에서 발췌>


병산서원의 만대루 공부 좀 잠깐 해본다.^^



지붕 위로 보여지는 산이 병산이다.


역시 이 검은 나무들이 이 계절엔 예쁨을 다 털어버렸다.

익은 봄부터 여름이 예쁠 듯 하다.



해설사의 얘기를 듣고 병산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당



주소.

병산서원의 생활을 책임지던 곳이라 함.






병산서원에서 나와 봉정사로 Go Go~



천등산 봉정사,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건물이란다.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의 산 속 공기는 조금 싸아~ 했는데,

일찌감치 패딩을 챙겨입은 아가씨가 앞에서 가고 있다.^^









산사의 청량한 공기가 상쾌하여 기분이 좋다.









극락전 앞의 3층석탑





수령 47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


아래로 내려가서 보니 뿌리가 이렇게 드러나 있다.

470년이 넘도록 산 나무라니..

경의를 표하며 우러러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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