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란다 한쪽에서 화분 두 개에 지었던 고추 농사는 완전 흉작이다.
나의 주 생활권인 서울집에 내가 심었던 게 아니고,
가끔 내려가는 경주집에 그니가 심은 것이었는데,
꽃은 잔뜩 피웠으면서 덩지만 커다래질 뿐 달랑 고추 한 개 매달고 그걸로 영 끝이었다.
이번에 오랜만에 내려와보니 고추 화분을 집 밖, 아파트 화단에 내놓고 있었다.
간혹 나비도 날아다니고 벌도 날아다니는 집 밖 화단에 내놓으면 혹시 고추가 열릴래나.. 하여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고추 화분을 가까이 들여다 봤지만 고추가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한 개는 열렸었던 건지 외로이 혼자 매달린 것이 시퍼렇고 단단해져 있었다.
그런데 고추는 안 열렸어도 그래도 보기는 좋던 녹색 싱싱한 잎새들이 요 며칠 비가 억수로 쏟아지면서,
그 억센 빗줄기와 바람에 아깝게도 상해 있었다.
내려오던 날부터 위탈이 났던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드만 점점 심해져서는 한 3일을 꼼짝 못하고 죽어있어야 했는데,
마시는 물조차 다 토해버리며 누워 있었으니,
당기는 걸로 골라잡아 먹으라고 사다준 세가지 죽도 쳐다 보기 싫은 상태였다.
역시 이번에도 예수님처럼 3일만에 부활하여, 이제는 무엇이든 먹어서 체력을 살려야 할 판이었는데,
쓰러진 소도 일으킨다는 낙지를 먹으려고 했으나 3일을 앓으며 나중엔 위액까지 토하게 되는 바람에 위산으로 목과 입안이 상했으니
얼마나 쓰리고 아픈지.. 할 수 없이 별 생각 없는 죽을 먹으며 목과 입안의 상처를 달래야 했다.
그러고있던 중에 그니가 친구네 텃밭에서 고추, 호박, 호박잎, 상추, 토마토 등을 얻어왔다.
물론 무농약 채소들이다.
이미 반은 먹어치우고 남은 걸 찍었다.^ㅎ^
근데 호박잎을 이렇게 따오면 아깝지...
줄기까지 따오면 쌈 싸먹을 때 같이 먹어도 좋고
된장 끓일 때 넣어 끓이면 좋드마는
이 사람, 호박잎 딸 줄을 몰라가~
담에 그 친구네 가서 또 따오게 되면^^
줄기까지 잘 따오라 일르고 또 일르고~~^ㅋ^
내가 호박잎과 상추를 씻는 동안,
그의 웰빙친구가^^ 조금 나누어 준 집된장을 넣고 참 이쁘게도 생긴 애호박 반 개를 썰어넣고
두부, 풋고추 등을 넣고 된장찌개를 후딱 끓여내는 그니..
그 된장찌개가 다 됐을 때쯤 난 씻고 있었던 호박잎도 몇 이파리 두어번 찢어 넣고~~
맛을 보니... 음~~ 된장찌개가? 된장찌개가!
흐미~ 맛이 끝내줘요~~~
냉장고 구석에 박혀 있던 고등어 한마리도 보글보글 지져서,
호박잎쌈에 쌈장 얹고 고등어살도 한 젓가락 떼어 얹은 뒤 새로 지은 고슬한 밥 한 숟가락 오므려 싸서
입이 터지게, 볼이 미어터지게 밀어 넣고, 남의 텃밭産 풋고추를 쌈장에 푹 찍어먹으니..
음~ 거기에 끝내주는 된장찌개!!
훌륭한 웰빙 식단에 며칠 굶으며 누워있느라 푹 꺼져 등에 가서 붙어있던 내 배가 비로소 탱탱하니 복되고 복되도다~~^^
호박은 그 친구네 텃밭에서 얻어온 날 반 잘라 된장찌개 끓이고 아껴 남겨둔 것~^^
이 접시에 담긴 고추가 바로 우리 올해 고추농사로 얻은 유일한 수확물이라는...
고추모 여섯인지 일곱 대에서 겨우 한 개~
내나 맛보라 하여 기대감 하나 없이 시큰둥히 쌈장에 찍어 베어물어봤더니..
오이고추였는지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고 적당 맵싸~ 달큰한 게, 맛이 참 좋드마...
품종은 좋은 것이었구마는 어찌 그리 인색하게 한 개만 달리노~
아니다, 우리가 잘몬 했다.
농사를 이따우로 잘 못 지아서 미안테이, 고추모야~
한 개라도 달려주어서 그나마 맛을 보게 해주었으니 고맙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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